뉴질랜드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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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 퍼스트는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는 뉴질랜드의 정당이다. 중도주의 노선을 따르지만,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을 주장하며 극우적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개입주의, 도덕적으로는 사회 보수주의를 지향하며, 반이민, 반세계화, 보호무역주의, 연금 수급자 이익을 지지한다. 1993년 윈스턴 피터스에 의해 창당되었으며, 1996년 총선에서 17석을 얻으며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이후 국민당과의 연립 정부 참여, 야당 활동, 그리고 다시 연립 정부 참여를 거쳐 2020년 총선에서 의석을 잃었으나, 2023년 총선에서 8석을 확보하며 국민당과의 연립 정부에 참여했다. 당 대표는 윈스턴 피터스이며, 인종차별 논란, 마오리족 관련 입장 변화, 당 재단 사기 사건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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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퍼스트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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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뉴질랜드 퍼스트 |
마오리어 명칭 | 아오테아로아 투아타히 |
약칭 | NZ 퍼스트 |
![]() | |
정치 | |
주요 인물 | 윈스턴 피터스 (대표) |
부대표 | 셰인 존스 |
총재 | 줄리안 폴 |
사무총장 | 홀리 하워드 |
창립 | 1993년 7월 18일 |
분리 정당 | 국민당 |
이념 | 우익 포퓰리즘 국수주의 사회 보수주의 |
정치 성향 | 우익 |
의회 현황 | |
하원 의석수 | 8석 |
총 의석수 | 123석 |
기타 정보 | |
색상 | 검은색 |
웹사이트 | 뉴질랜드 퍼스트 공식 웹사이트 |
2. 당 이념 및 노선
뉴질랜드 제일당은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며, 정치적 노선은 중도주의이다.[137][138][139] 그러나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을 주장하며, 극우적인 행보를 보여 "극우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153][154]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중도적이고 경제 개입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 보수주의적인 입장이다.[149] 이 당은 포퓰리즘적 수사를 통해 주류 정치 체제와 차별화하고, 주요 사회 및 정치적 변화에 대한 구속력 있는 국민투표를 지지한다. 또한 반이민,[150][151] 반세계화[152] 성향과 함께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고,[153][154] 연금 수급자의 이익을 옹호한다.[165]
과거 마오리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마오리족 존중 강령이 삭제되면서 현재는 마오리족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마오리족의 지지도 받지 않고 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15가지 기본 원칙"을 핵심 정책으로 삼고 있으며, 그 첫 번째는 "뉴질랜드와 뉴질랜드 국민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159] 이 당은 "모든 뉴질랜드 국민의 관습, 전통 및 가치를 증진하고 보호"하고자 한다.[161]
뉴질랜드 제일당은 복지, 특히 노년층 복지 정책과 반이민 입장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165][160][166]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이민을 비판하며, 뉴질랜드 문화에 동화될 수 있는 연간 7,000명에서 15,000명 사이의 "자격을 갖춘" 이민자로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167]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인상하는 것을 지지하고,[172] 국유 자산 민영화(특히 해외 매수)에 반대하며, 전 국영기업을 되사는 것을 주장한다.[58] 반면, 세금 감면과 정부 규모 축소를 선호하고, 사회 보수주의와[165] 복지 쇼비니즘을 지지한다.[152] 연금에 대한 추가세 폐지,[175] 순 평균 임금의 66% 수준의 연금 제도 시행,[176] 슈퍼골드 카드 도입을 통해 고령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137] 퇴직 연령 인상에 반대한다.[177]
"법과 질서" 문제는 뉴질랜드 제일당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174][178] 더 엄격한 형법, 더 긴 형량, 형사책임연령 인하를 주장한다.[179]
2013년, 뉴질랜드 제일당 의원 7명 전원은 결혼 개정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182][183]
뉴질랜드 제일당의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 뉴질랜드 문화 보존을 위한 이민 유입 반대 (특히 아시아계 이민)[168]
- 범죄 억제를 위한 처벌 강화, 징역형 강화[179]
- 와이탕이 조약 관련 부담 비용 경감
또한, 노년층 이익 증대·보호, 마오리족 지위 향상 및 권리 보호를 주장하며, 이민 유입, 헤이트 스피치 법 제정, 국유 재산 민영화(특히 해외 매각)에 반대한다. 감세 및 전 국민의 의료·교육 기회에는 찬성하며, 아시아계 이민자 유입 과다를 비판하며 뉴질랜드는 뉴질랜드인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아시아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2. 1. 이념
뉴질랜드 퍼스트는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며, 정치적 노선은 중도주의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당명과 유사하게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을 주장하며, 극우적인 행보를 보여 "극우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137][138][139]2015년에는 윈스턴 피터스가 아시아계 유학생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으며, 론 마크 의원은 멜리사 리 의원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
과거 마오리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마오리족 존중 강령이 삭제되면서 현재는 마오리족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마오리족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 보수주의자이자 경제 민족주의자[19] 또는 우익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피터스는 1980년대와 90년대 뉴질랜드의 경제 변화에 힘입어 부상했다. 신자유주의와 진보주의에 반대하며 경제 자유화를 지지하는 양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20] 피터스는 마오리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에,[21][5][22] 로저노믹스를 시행한 노동당에 투표해 온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마오리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당은 "친마오리"로 여겨지기도 했다.[23]
역사적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포퓰리즘 정당으로 묘사되었으나,[130][131][132] 2010년대 이후로는 우익 포퓰리즘으로 불린다.[133][134][135] 이 당은 민족주의,[162][136] 중도주의,[137][138][139] 보수주의,[165] 사회 보수주의,[140] 중도우파,[141][142] 우익으로도 묘사되었다.[143][144][145][146][147] 그러나 토드 도노반 교수는 2020년에 "극우/우익 포퓰리스트"는 뉴질랜드 제일당을 잘못 분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48]
뉴질랜드 퍼스트는 경제 문제에 대해 중도적이고 개입주의적 입장을,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한다.[149] 이 당은 포퓰리즘적 수사를 사용하며, 주요 사회 및 정치적 변화에 대한 구속력 있는 국민투표를 지지한다. 또한 반이민,[150][151] 반세계화,[152] 보호무역주의,[153][154] 연금 수급자의 이익[165]을 지지한다. 지지 기반은 대부분 중년에서 고령의, 농촌 지역 및 마오리 투표자들이다.[149][155]
이 당은 "구속력 있는 시민 발의 국민투표"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국민을 위한 국민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정부가 "국민의 의지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해 왔다.[156] 피터스는 "정부와 관료 조직의 지적으로 오만한 엘리트"를 비판하는 등 반체제 및 반엘리트 수사를 사용했다.[157][158][156]
뉴질랜드 제일당 정책의 핵심에는 "15가지 기본 원칙"이 있으며, 첫 번째는 "뉴질랜드와 뉴질랜드 국민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159] 이는 윈스턴 피터스가 주장해 온 정책을 반영한다.[160] 뉴질랜드 제일당은 "모든 뉴질랜드 국민의 관습, 전통 및 가치를 증진하고 보호"하고자 한다.[161] 이 당과 피터스는 민족주의자로 묘사되기도 한다.[136][162][163] 전 당 관계자 조시 반 빈은 유산 보존과 국가 상징 존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당을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반 빈은 뉴질랜드 제일당의 포용적인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자유주의적 가치와 진보적 민족주의의 결합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164]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 뉴질랜드 문화 보존을 위한 이민 유입 반대 (특히 아시아계)
# 범죄 억제를 위한 처벌 및 징역형 강화
# 와이탕이 조약 관련 부담 비용 경감
노년층 이익 증대·보호, 마오리족 출신자 지위 향상 및 권리 보호를 주장하며, 이민 유입, 헤이트 스피치 법 제정, 국유 재산 민영화 (특히 해외 매각)에 반대한다. 감세 및 전 국민 의료·교육 기회에는 찬성한다. 아시아계 이민자 유입이 과다하다며 정부 이민 정책을 비판하고, 뉴질랜드는 뉴질랜드인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당으로서 반아시아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2. 2. 노선
뉴질랜드 제일당은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며, 정치적 노선은 중도주의이다.[137][138][139] 그러나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을 주장하여 극우 정당으로 비판받기도 한다.[153][154]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중도적이고 경제 개입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 보수주의적인 입장이다.[149] 이 당은 포퓰리즘적 수사를 통해 주류 정치 체제와 차별화하고, 주요 사회 및 정치적 변화에 대한 구속력 있는 국민투표를 지지한다. 또한 반이민,[150][151] 반세계화[152] 성향과 함께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고,[153][154] 연금 수급자의 이익을 옹호한다.[165]
2015년에는 당 대표인 윈스턴 피터스가 아시아인 유학생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으며,[168] 론 마크 의원은 멜리사 리 의원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과거 마오리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마오리족 존중 강령이 삭제되면서 현재는 마오리족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마오리족의 지지도 받지 않고 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15가지 기본 원칙"을 핵심 정책으로 삼고 있으며, 그 첫 번째는 "뉴질랜드와 뉴질랜드 국민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159] 이 당은 "모든 뉴질랜드 국민의 관습, 전통 및 가치를 증진하고 보호"하고자 한다.[161]
뉴질랜드 제일당은 복지, 특히 노년층 복지 정책과 반이민 입장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165][160][166]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이민을 비판하며, 뉴질랜드 문화에 동화될 수 있는 연간 7,000명에서 15,000명 사이의 "자격을 갖춘" 이민자로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167]
피터스는 아시아계 이민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168] 2005년에는 마오리족보다 아시아인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뉴질랜드 통계청은 이를 반박했다.[169] 2008년, 부당수 피터 브라운은 뉴질랜드 아시아계 인구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들이 사회 통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170]
뉴질랜드 제일당은 혼합된 경제 정책을 지지하며, 경제 민족주의를 촉구한다.[171]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인상하는 것을 지지하고,[172] 국유 자산 민영화(특히 해외 매수)에 반대하며, 전 국영기업을 되사는 것을 주장한다.[58] 반면, 세금 감면과 정부 규모 축소를 선호하고, 사회 보수주의와[165] 복지 쇼비니즘을 지지한다.[152] 연금에 대한 추가세 폐지,[175] 순 평균 임금의 66% 수준의 연금 제도 시행,[176] 슈퍼골드 카드 도입을 통해 고령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137] 퇴직 연령 인상에 반대한다.[177]
"법과 질서" 문제는 뉴질랜드 제일당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174][178] 더 엄격한 형법, 더 긴 형량, 형사책임연령 인하를 주장한다.[179] 2011년에는 범죄(대체 조항 59) 개정법 2007("체벌 반대 법") 폐지를 서약했으며,[180] 2017년 총선에서도 이 법 폐지를 공약했다.[181]
2013년, 뉴질랜드 제일당 의원 7명 전원은 결혼 개정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182][183] 피터스는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요구했다.[184][183]
뉴질랜드 제일당의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 뉴질랜드 문화 보존을 위한 이민 유입 반대 (특히 아시아계 이민)[168]
- 범죄 억제를 위한 처벌 강화, 징역형 강화[179]
- 와이탕이 조약 관련 부담 비용 경감
또한, 노년층 이익 증대·보호, 마오리족 지위 향상 및 권리 보호를 주장하며, 이민 유입, 헤이트 스피치 법 제정, 국유 재산 민영화(특히 해외 매각)에 반대한다. 감세 및 전 국민의 의료·교육 기회에는 찬성하며, 아시아계 이민자 유입 과다를 비판하며 뉴질랜드는 뉴질랜드인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아시아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3. 역사
1993년 뉴질랜드 총선을 앞두고 윈스턴 피터스가 뉴질랜드 국민당을 탈당하여 뉴질랜드 제일당을 창당했다. 같은 해 총선에서 2석을 획득했다.[24] 피터스의 정치적 이념과 주장이 당의 주장이 되면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피터스의 자가용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1996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마오리족 출신 유권자와 고령층 유권자를 중심으로 17석을 획득하며 창당 3년 만에 약진했다.[25] 뉴질랜드 국민당과의 연정에 참여하여 피터스는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제니 십리와의 갈등으로 1998년 피터스는 해임되었고, 국민당과 뉴질랜드 제일당의 연정은 붕괴되었다.[33]
연정 붕괴 이후 1999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5석으로 의석수가 줄었고, 뉴질랜드 노동당이 정권을 탈환했다. 2002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이민 정책, 와이탕이 조약 불평등 문제 시정, 형벌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13석을 획득했으나,[37] 돈 브래시가 뉴질랜드 국민당 당수에 취임하면서 국민당 지지로 정세가 변화했다.
2005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7석에 그쳤으나,[40] 헬렌 클라크 총리의 요청으로 협력 정당으로 참여하여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모든 의석을 잃었다.[53]
2011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8석을 획득하여 국정에 복귀했고, 2014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의석수가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2017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9석에 그쳤다. 그러나 국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재신다 아던을 총리로 하는 노동당과의 연정 수립에 합의하여 정권에 복귀했다.[201][202] 2020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다시 모든 의석을 잃었으나,[203] 2023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8석을 획득하여 의회에 복귀했다.[204]
3. 1. 창당과 초기 (1993-1996)
는 1992년 6월, 마오리족 담당 장관을 역임했던 짐 볼거 국민당 정부에서 타우랑가 국민당 국회의원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12][13] 그는 이전 1991년에 국민당의 경제 정책, 속칭 루타나시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후 내각에서 해임된 바 있다.[12] 1993년 3월 19일, 피터스는 국민당에서 사퇴했다.[12][16] 그는 또한 의회에서 사임하여 1993년 4월 17일 자신의 선거구에서 보궐 선거를 유발했으며, 이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90.8%의 득표율로 승리했다.[17]
1993년 7월 18일, 그해 총선을 앞두고 피터스는 뉴질랜드 제일당을 창당했다.[174][18]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전체 투표의 8.4%를 획득했다.[24] 피터스는 타우랑가에서 손쉽게 재선되었고, 또 다른 뉴질랜드 제일당 후보인 타우 헤나레가 노던 마오리 의석을 차지하면서 당은 총 두 명의 국회의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3. 2. 국민당과의 연정 (1996-1998)
1996년 총선에서 혼합-정비례 대표제(MMP) 도입으로 뉴질랜드 퍼스트는 13%의 득표율로 17석을 차지했으며, 5개의 마오리 선거구 의석을 모두 석권했다. 이로써 창당 3년 만에 킹메이커 위치에 올라 국민당과 노동당 중 어느 정당과도 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25][26]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뉴질랜드 퍼스트는 국민당과 연정을 맺고 제4차 국민당 정부의 3번째 임기에 참여했다. 이는 국민당이 뉴질랜드 퍼스트의 요구를 더 잘 수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27][28]
연정 협약에 따라 윈스턴 피터스는 부총리 겸 재무장관(Treasurer, 뉴질랜드 재무장관보다 상위 직책)이라는 특별 직책을 맡았다. 국민당은 정책 면에서도 상당한 양보를 했으며, 피터스는 자신의 당에서 장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29]
초기에는 연정 관계가 순조로웠으나, 투쿠 모건의 공금 사용 의혹 등으로 당내 문제가 발생했다.[30][31] 1997년 제니 쉴리가 총리가 된 후, 뉴질랜드 퍼스트가 자당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두 당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998년 8월, 웰링턴 국제공항 지분 매각을 둘러싼 갈등으로 쉴리 총리는 피터스를 해임했고, 뉴질랜드 퍼스트는 즉시 연정 협정을 파기했다.[33] 그러나 타우 헤나레를 포함한 여러 의원들은 국민당 주도 정부를 계속 지지하며 탈당하여 마우리 퍼시픽을 결성하거나 무소속으로 활동했다.[34]
3. 3. 야당 시절 (1999-2005)
1996년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13%의 득표율로 17석을 차지하며 원내에 진출했다. 특히 5개의 마오리 선거구 의석을 모두 석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때 당선된 5명의 마오리족 의원들은 "타이트 파이브(Tight Five)"로 불렸다.[26]국민당과 노동당 모두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킹메이커 역할을 맡게 되었다. 결국 뉴질랜드 제일당은 국민당과의 연립 정부를 선택했고, 당수 윈스턴 피터스는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 임명되었다.[29]
그러나 1998년, 웰링턴 국제공항(Wellington International Airport) 민영화 계획을 둘러싼 갈등으로 피터스는 해임되었고, 국민당과의 연정은 붕괴되었다. 이 여파로 뉴질랜드 제일당은 내분을 겪었고, 1999년 총선에서는 5석으로 의석수가 크게 줄었다.
2002년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이민 정책 강화, 와이탕이 조약 관련 문제 해결, 범죄 처벌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13석을 획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돈 브래시가 국민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다.
3. 4. 노동당과의 협력 및 연정 (2005-2008, 2017-2020)
1996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혼합-정비례 대표제(MMP) 도입으로 소수 정당도 의석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당수 윈스턴 피터스의 인기에 힘입어 13%의 득표율로 17석을 차지했다.[25] 특히 5개의 마오리 선거구 의석을 모두 석권하며, '타이트 파이브'로 불리는 5명의 마오리 의원을 배출했다.[26]이러한 결과로 창당 3년 만에 킹메이커 위치에 오른 뉴질랜드 제일당은 국민당과 노동당 양측과 협상에 들어갔다. 선거 전 예상과는 달리, 국민당과의 연정을 선택했고, 피터스는 부총리 겸 재무장관(Treasurer)이라는 특별 직책을 맡았다.[28][29]
그러나 연정은 순탄치 않았다. 투쿠 모건의 공금 사용 의혹 등으로 당내 문제가 발생했고,[30] 제니 쉴리가 총리가 된 후에는 정책 갈등이 심화되었다.[32] 결국 1999년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4% 득표율로 5석 확보에 그쳤다.[35]
2002년 총선에서는 이민, 조약, 범죄 관련 공약을 내세워 10.38%의 득표율로 13석을 확보하며 재기했다.[37] 그러나 국민당의 약세로 킹메이커 역할은 하지 못했다.
2005년 총선에서는 5.72% 득표율로 7석을 얻는 데 그쳤다.[40] 노동당과의 신뢰 공급 협정을 통해 정책적 양보를 얻어내고, 피터스는 내각 외부에서 외교부 장관직을 수행했다.[40] 이 기간 동안 슈퍼골드 카드 도입 등 성과를 냈다.[45][46]
2017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9석(득표율 7.20%)에 그쳤으나, 국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다시 한번 연정 구성의 주요 정당으로 부상하였다.[201] 10월 19일, 피터스가 재신다 아던을 총리로 하는 노동당과의 연정 수립에 합의하여 정권에 복귀했다.[202]
3. 5. 원외 정당 시기 및 복귀 (2020-현재)
2008년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억만장자 오웬 글렌, 벨라 가족, 밥 존스로부터의 기부금 관련 분쟁에 휘말렸다. 이로 인해 중대 사기 사무소와 특권 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었고, 윈스턴 피터스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49][50] 조사 결과 피터스는 위법 행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특권 위원회는 그가 기부금 신고를 누락하여 의회를 오도했다고 판단했다.[51] 이 사건은 총선을 앞두고 당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주었다.[52]당시 야당 대표였던 존 키는 뉴질랜드 제일당과의 협력을 배제했고, 헬렌 클락 총리는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총선 결과, 피터스는 지역구 탈환에 실패했고, 당은 의석 확보를 위한 5% 득표율 기준을 넘지 못해 원외 정당이 되었다. 피터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재기를 다짐했다.[53] 2009년, 오랜 기간 부대표를 역임한 피터 브라운이 사퇴했다.[54]
2011년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8석을 얻어 원내에 복귀했다. 2014년 총선에서는 의석수를 더 늘렸지만, 2017년 총선에서는 9석에 그쳤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뉴질랜드 제일당은 다시 한번 킹메이커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피터스는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을 통해 재신다 아던 총리 내각에 참여했다.[201][202]
2020년 총선에서는 다시 모든 의석을 잃었으나,[203] 2023년 총선에서 8석을 획득하며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204] 뉴질랜드 제일당은 국민당과의 연정 협상을 통해 제6차 국가 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연정 협약에 따라 외국인 바이어 세금 철회, 공정 임금 협정 폐지, 공동 통치 정책 폐지 등 여러 정책 변화가 이루어졌다.[118][119][120][121][122]
또한, 지역 인프라 기금 조성, 영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 정부 부서의 영어 사용 의무화, 헤 푸아푸아(He Puapua)] 보고서 관련 작업 중단,
4. 논란
뉴질랜드 제일당은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며,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을 주장하여 극우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015년 윈스턴 피터스 대표는 아시아인 유학생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고, 론 마크 의원은 뉴질랜드 국민당 소속 한국계 국회의원인 멜리사 리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55] 과거 마오리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마오리족 존중 강령이 삭제되면서 현재는 마오리족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마오리족의 지지도 받지 않고 있다.
2011년 총선 운동 막바지, 티 테이프 스캔들(Tea Tape scandal)이 불거지면서 피터스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전국당과 ACT 뉴질랜드 간의 협약을 비판하며, ACT 지도자였던 돈 브래시가 뉴질랜드 제일당의 고령 지지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고 비난했다. 피터스는 TVNZ의 소수 정당 대표 토론에서 승리했고, 이후 실시된 문자 투표에서 응답자의 36%가 피터스가 승리했다고 답변했다.[55]
선거 당일 뉴질랜드 제일당은 정당 득표율 6.6%를 얻었다.[56]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뉴질랜드 제일당의 의회 복귀를 티 테이프 스캔들(Tea Tape scandal)의 공으로 돌렸지만, 피터스는 3년 동안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2012년, 브렌던 호란 의원이 어머니의 돈을 훔쳐 도박에 사용했다는 혐의로 제명당했다.[57]
4. 1. 인종차별 논란
제일당은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며,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을 주장하여 극우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는다.[55] 2015년에는 윈스턴 피터스 대표가 아시아인 유학생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기도 했다.[55] 론 마크 의원은 뉴질랜드 국민당 소속 한국계 국회의원인 멜리사 리를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55]과거에는 마오리족의 지지를 받았으나, 마오리족 존중 강령이 삭제되면서 현재는 마오리족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마오리족의 지지도 받지 않고 있다.[55] 뉴질랜드 제일당은 뉴질랜드 문화 보존을 위해 이민 유입에 반대하며(특히 아시아계), 아시아계 이민자 수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한다.[61]
4. 2. 마오리족 관련 입장 변화
뉴질랜드 제일당은 마오리족과 관련된 입장에서 변화를 보여왔다. 1996년 선거에서 최고점을 기록했을 때, 뉴질랜드 제일당은 모든 마오리 선거구에서 승리했고, "타이트 파이브(Tight Five)"라는 별명을 얻은 5명의 마오리족 국회의원을 배출했다.[190] 이후 몇 년 동안 마오리 선거구 유권자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190]그러나 현재 뉴질랜드 제일당은 더 이상 마오리 선거구 유지를 지지하지 않으며, 앞으로 마오리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191] 실제로 2002년, 2005년, 2008년 총선에서는 마오리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191] 과거 마오리족들이 지지한 정당이었는데, 마오리족을 존중하는 강령이 삭제되면서 현재는 마오리인 후보를 공천하지 않으며 마오리족도 이 당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와이탕이 조약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174] 당은 와이탕이 조약을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언급하지만, 이것이 뉴질랜드 헌법의 일부가 되는 것은 지지하지 않는다.[192] 윈스턴 피터스는 "조약 불만 산업"이라고 부르는 와이탕이 조약 위반에 대한 경솔한 주장을 통해 이익을 얻는 행위와 조약 협상 및 와이탕이 조약 청구 및 합의 지불 비용을 비판했다.[193][194] 또한 당은 마오리족에 대한 "특별 대우"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195]
2017년 7월, 피터스는 뉴질랜드 제일당 정부가 마오리 선거구 폐지 여부와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일지 여부에 대한 두 건의 구속력 있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196] 그러나 2017년 뉴질랜드 총선 이후, 노동당 대표 재신다 아던과의 연정 구성 협상 중 마오리 선거구 폐지에 대한 국민투표 요구를 철회하는 것을 고려할 의향이 있음을 시사했다.[197]
2023년, 피터스는 정부 부처의 마오리어 명칭 사용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이를 뉴질랜드 국민 대다수에게 "이해할 수 없다"고 묘사하고 "겉치레"를 비판했다. 뉴질랜드 제일당이 참여한 연립 정부는 마오리족과 관련된 부처를 제외하고는 "주요 명칭을 영어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198]
4. 3. 뉴질랜드 제일당 재단 사기 사건
제공된 소스에는 '뉴질랜드 제일당 재단 사기 사건'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5. 역대 선거 결과
(선거구/정당 명부)